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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당신의 책상 위에는 편지지가 있다. 당신은 한 손에 펜을 쥐고 있다. 다른 손으로 당신은 당신의 눈썹 위 머리칼을 꼬고 있다. 당신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천천히 문장을 쓴다. 당신의 문장은 정갈하다. 당신은 쓰다 말고 창밖을 본다. 격자 무늬가 있는 창문이 닫혀 있고 창문 바깥으로 덧창이 열려 있다. 그 사이로 바람이 불고 바 람이 불며 덧창을 흔들어 덧창으로부터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다. 당신은 편지지 위에 잉크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펜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어깨에 두른 숄을 단단히 고정하 며 일어선다. 일어서면서 의자 다리와 바닥이 마찰하며 끄는 듯한 소리를 낸다. 당신은 잠 시 멈칫하지만 움직이던 동작 그대로 일어서 창문 가까이 다가간다. 창 바깥에서는 덧창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새가 까악 까악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은 창문 바깥을 내려다본다. 창문 아래에는 편지를 기다리는 사환이 있다. 바람이 숄과 겹친 한 겹의 옷 사 이로 들어와 당신은 몸을 움츠린다. 사환은 양손을 망토 속에 집어넣고 있다. 두 손을 어떻 게 하고 있는지는 망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사환의 모자는 무척 챙이 크고 바람 때문에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만 같다. 사환은 그러면서도 모자를 붙들지 않고 있었다. 사환은 잎 없이 가지만 남은 나무 아래 앉아 있다. 여름이면 이쪽에는 벼락을 동반한 폭우가 자주 내 렸고 그럴 때면 나무가 모여 있는 저쪽 숲에 종종 벼락이 내리쳐 어떤 나무들은 색이 검 은……‘거란다. 새들도 벼락을 맞아서 검어진 거야. 어머니는 나를 무릎에 앉혀 두고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 올 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시고는 하셨지.’ 당신은 그런 생각에 잠겨 편지 를 쓰는 일과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사환을 잊고 잠시 생각에 잠겼을지 모른다. 그러다 나 무 아래 앉아 있는 사환이 일어서 이쪽 창문을 올려다보는 것을 보고 화들짝 잰걸음으로 뒤 로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몸을 숨기기 위해. 몰래 훔쳐본 것을 들킨 사람처럼. 사환은 뒷걸 음질 친 당신이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덧창을 닫지 않은 채 황급히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온다. 창문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앉아 오른 손에 펜을 들고 중단된 편지의 문장을 이어 쓴다. 예를 들면 벼락 맞은 새에 관하여. 동시 에 당신은 사환을 보고 있지 않으므로 사환이 무얼 하며 기다리고 있는지, 앉아 있는지 서 있는지 물구나무를 섰는지, 아니면 드디어 모자가 바람에 날려 모자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있는지, 쓰지 않는다. 당신은 그렇게 쓰지 않음과 동시에 지금 당장 창문 앞으로 가 방금까 지 잎 없는 검은 나무 아래 앉아 있던 사환이 지금도 거기 있을지 아니면 그 자리에 없을지 두 눈으로 확인할런지도 모르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어디선가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 그것 을 다시 편지지 위에 써 내려갈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당신은 창문 앞에 서 있음으로써 거 기 있는 사환에게 당신이 사환을 지켜보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당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 고, 아주 보이지 않은 채로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그 불안 속에서, 그 불안을 떨치려고, 당신을 기다려야만 하는 사환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잠시 사라진 사환 의 모습을 앉은 채로 쫓으며, 당신이 보고 있지 않더라도 사환은 창 속 나무 근처를 서성이 고 있을 것을 확신하며, 나에게 한 문장 한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써 내려가고 있을 것이 다. 나는 당신의 편지를 읽지 않고도 그것이 눈에 잡힐 듯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