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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그는 제 살결과 가장 가까운 곳에 편지를 숨겼다고 한다. 편지의 글자는 번져 알아볼 수가 없었으며, 세 번 접힌 편지지는 접힌 자국 대로 찢겨 있었다. 빗물에 찢겼는지, 아니면 그 내용을 보려고 하다가 찢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중의 단 세 조각을 찾아내었을 뿐 이다. 나무 아래에 있었지만 그는 완전히 비를 피하지는 못하였다. 갑자기 후두둑 떨어지는 커다란 물방울들을 맞고 졸음이 오는 와중 정신을 차리며. 비가 멎기만을. 이러다가 갑자기 멎어지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때 그는 그가 편지를 전달하러 가던 길이라는 사실을 기 억하고 있었을까? 어느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는지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그는 나를 원망 했을까? 그 숲에서 길을 잃고 헤메게 만든 나를? 그 추위 속에 있게 한 나를? 해가 뜨고 있 으므로 당연히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를? 찾지 않은 나를? 나는 그 날 밤에 생각했다. 점점 날이 밝아지고 있었고 먹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당신은 집에 돌아갔을 것이 라고. 세 그루의 나무 아래서 사환은 기다린다. 가만히 빗물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 고 있다. 사환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의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편지를 배달하는 것이 사 환의 일이다.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사환의 일이다. 사환은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편지가 완성되는 것을 기다려야만 하며, 기다림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과 같이 우연히 추운 날은, 비까지 내리는 날은 정말 기다리기가 힘이 든다. 사환은 망토를 두르고 나오기 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망토는 집을 나오기 전에 바람 소리를 듣고 챙겨 나온 것이다. 모자도 그렇다. 이미 해가 진 뒤였으므로 다른 식구의 모자를 잘못 챙겨 나온 것인지 모자 는 몹시 컸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 어째서 거기에 있 었는지……. 여자도 남자도 낮잠을 잘 낮 시간에 사환은 잠을 잔다.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 을 치고,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더라도 낮 시간에는 커튼 사이로 어쩔 수 없이 햇빛이 들어온다. 그것은 무척 따사롭고…… 눈이 부시다. 그것은 눈 안에서 돌아다니는 이상한 먼 지들을 만들어낸다. 사환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 올린다. 햇빛은 이불 속마저 투과해 오는 것 같다. 끝까지 남아 있는 잔상. 그림자. 그것은 창문 너머 그 사람이 들고 있는 등불 같다. 밤눈에 익숙해진 눈이 보게되는 그 등불. 그 등불의 밝음. 기다리면서 사환은 그 사람 의 표정을 다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어둡고, 거기는 밝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