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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사환이 편지를 가지고 오는 것은 언제나 이런 밤중이다. 밤이 아니었다면 편지를 가져오는 사람은 우체부였을 것이다. 밀봉된, 소인이 찍힌 우편을 들고. 내가 오늘 낮에 받아든 우편 물들처럼. 왜일까. 당신과 나는 밤에 잠들지 못한다. 우리는 편지를 쓴다. 편지를 펼쳐놓고. 쓴다. 쓰는 척을 한다. 우리는 쓰지 않는다. 우리가 쓰지 않는 것을 사환은 모르고 있다. 사 환은 알고 있을까? 사환이 당신으로부터 나에게, 나에게서 당신에게로, 전달하는 편지 봉투 는 하나다. 하나의 봉투 속에 매번 접었다가 펼친 같은 한 장의 편지지를 넣는다. 접었다가 펼쳤다가 다시 접어 접히기를 반복하느라 양 손으로 힘을 주면 곧바로 찢어질 것 같은, 아 홉 개의 구획으로 구분된. 사환은 그 편지를 읽어야 한다. 편지 봉투의 귀퉁이가 항상 같은 손자국-그것을 세게 쥔 사환 자신의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그리 고 가던 길로부터 멈춰 서서 그것을 꺼내어 읽어야 한다. 그 때문에 편지는 밀봉되어 있지 않다. 사환은 문간에 서 있다. 망토 속에서 편지를 꺼내어 나에게 건넸던 그 자세 그대로, 내가 바로 답장을 건넬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환이 가져 온 편지를 곧바로 사환에게 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사환에게 나가서 기다려달라고 정중 히 부탁한다. 사환의 표정은 커다란 모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나 필시 실망할 것이다. 바 깥은 이곳보다 춥기 때문이다. 사환의 신발 앞코에는 마른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여 기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사환에게 내 어께에 두른 숄을 둘러주고 싶은 강 한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사환은 이미 몸을 돌려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다. 계단을 삐걱 거리는 소리 없이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환은 마치 유령처럼 소리 없이 계단 을 걸어 내려가고 있다. 나는 계단을 밟는 소리를 좀처럼 듣지 못한다. 사환에게는 사환만 의 방법이 있고 나는 그것을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환이 당신과 나의 편지를 부러 꺼내어 읽지 않는 것처럼. 나는 자리에 앉는다. 앉아서 사 환이 건넨 편지를 편지 봉투로부터 꺼낸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이전번 내가 보냈던 편지와 동일한 편지이다. 나는 그것을 펼친다. 아홉 개의 구획으로 구분되어 있는 종이를 판판하게 펼치려 노력한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을 눈으로 읽는다. 문장들은 모조리 끊겨 있다. 나는 그 것을 좋을 대로 읽는다. 실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런 문장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나 는 그것을 대충 훑어보고 다시 원래 모양대로 접는다. 접고서 다시 원래 편지 봉투에 넣는 다. 밀봉하지 않는다. 그 편지 봉투에는 품 안에서 편지를 꼭 쥐고 있느라 난 손자국-이 나 있다. 나는 그것에 내 손가락을 올린다. 나는 사환을 돌려보내며 사환에게 했던 말을 상기 한다. 내가 답장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려줘요. 나는 사환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사환의 손가락은 무척 차가웠다. 나는 그 온도를 나의 손가락으로 쓸어 느끼며……. 나의 책상 위 에는 쓰다 만 편지지와 다 쓴 편지가 있다. 쓰다 만 편지지는 쓰다 만 채로 언제나 쓰이지 않는 채로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이미 할 말을 다 썼으며 우리가 하 고 싶은 일은 이 모든 수고를 사환에게 전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보며 고통 스러워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당신도 그러할까? 당신도 나만큼 고통스러울까? 그러나 그렇게 묻는 일은 매번 다른 편지를 쓰는 일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적어도 나는 잘 알고 있다.